예전에는 명절 때마다 친척 어른들이 꼭 물어보는 게 있었다. “결혼은 언제 하니?” 그 질문이 부담스러워서 명절을 피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질문을 듣는 일도 거의 없다. 주변에서도 결혼을 늦추거나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 역시 한때는 ‘언젠가 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요즘은 그 ‘언젠가’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
오늘 읽은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조사 결과는 이 같은 변화를 수치로 확인해주는 자료였다. 미혼 남성과 여성 모두 결혼을 '선택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 이유를 남녀가 서로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이 차이를 들여다보면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또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 남녀는 이렇게 말했다
2024년 10월, 전국의 20~44세 미혼 및 기혼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2차 국민인구행태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성의 41.5%, 미혼 여성의 55.4%가 결혼 의향이 없거나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성별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미혼 남성의 주요 이유:
결혼생활 비용 부담이 커서 (25.4%)
독신생활이 좋아서 (19.3%)
일에 더 충실하고 싶어서 (12.9%)
기대에 맞는 상대가 없어서 (12.1%)
소득 부족 (10.4%)
미혼 여성의 주요 이유:
기대에 맞는 상대가 없어서 (19.5%)
독신생활이 좋아서 (17.0%)
일에 더 집중하고 싶어서 (15.5%)
가부장적 가족 문화가 싫어서 (12.3%)
결혼생활 비용 부담 (11.6%)
결혼 조건에 대한 인식도 엇갈렸다. 예컨대 남성 응답자의 97.3%가 '배우자가 육아와 가사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86.6%만 그렇게 생각했다. 반대로 '전세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건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출산 의향 역시 여성(59.1%)이 남성(41.6%)보다 ‘의향 없음 또는 미정’ 비율이 높았다.
🔍 통계 뒤에 숨은 맥락: 결혼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 조사는 단순한 현상 나열을 넘어 결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다음과 같다.
남성은 경제적 부담, 여성은 구조적 불평등
남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돈’의 문제로 인식한다. 반면 여성은 결혼 후 겪게 될 가족 내 역할 갈등이나 커리어 단절을 더 크게 우려한다. 이는 남녀가 사회에서 처한 위치가 다름을 반영한다.
‘좋아서 안 한다’는 인식 확산 중
과거에는 ‘못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안 한다’는 의지가 더 많아졌다. ‘독신이 좋아서’라는 응답이 남녀 모두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결혼은 사적 선택에서 공적 문제로 이동 중
출산율 저하, 가족구조의 변화, 부동산·고용 불안정 등은 모두 결혼 문제와 맞닿아 있다. 결국 결혼은 개인의 일이지만, 사회 전체의 구조와 정책이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 경제와 사회가 함께 읽어야 할 3가지 인사이트
결혼은 경제적 투자라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
주거비, 육아비, 교육비 등 결혼과 출산은 곧 재정적 선택으로 연결된다. 부동산 가격과 임금 정체는 결혼률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여성의 경제 활동 확대는 가족 구조에 구조적 재설계를 요구한다
여성의 커리어 중심 가치관은 결혼과 출산보다 자아실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와 충돌하며, 결혼 자체를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만든다.
정책은 결혼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억지로 결혼을 촉진하는 접근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주거 안정, 육아 지원, 노동 유연성 등 환경을 개선해주는 방식이 핵심이다.
🤔 나 역시 '결혼은 선택'이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나도 이제는 ‘결혼은 필수’라는 말보다 ‘결혼은 선택’이라는 말이 훨씬 자연스럽게 들린다. 결혼하지 않아도 충분히 안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을 많이 봐왔고, 때로는 그게 더 용기 있어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런 변화가 결국은 ‘결혼하고 싶지만 못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덮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용, 사회적 기대, 커리어 단절… 이 모든 장애물들이 사라진다면, 정말 아무도 결혼하지 않을까?
우리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구조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 지금 우리가 살펴봐야 할 질문들
2030 세대의 소득 수준 변화와 결혼률 상관관계
가족 정책 선진국(예: 북유럽)의 결혼·출산 유도 전략
가부장적 가족문화가 실제 결혼 결정에 미치는 영향
혼인율·출산율 저하가 부동산 시장, 소비 구조에 미치는 파급 효과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변화와 결혼 가치관
📝 세 줄 요약
미혼 남성은 ‘경제적 부담’을, 여성은 ‘가부장적 문화’와 ‘커리어 저해’를 결혼 기피 이유로 꼽았다.
결혼은 더 이상 사회적 당위가 아닌 개인의 선택이 되었으며, 그 선택을 가로막는 구조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