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였다. 청첩장을 받았는데 “서울 모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조촐하게 저녁으로 한다”고 쓰여 있었다고. 순간, 드레스코드보다 메뉴 가격이 먼저 궁금해졌다고한다. 검색해보니 1인 52만 원. 참석자 대부분이 30대 중반의 직장인인데, 다들 부담 없이 수락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결혼식은 뷔페에서, 미식은 TV 프로그램에서 경험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파인다이닝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걸까? 도대체 이 한 끼에 들어간 ‘값’은 무엇이고, ‘값어치’는 무엇일까?
오늘은 이 낯선 고급 외식의 문화가 가진 경제적 흐름을 따라가 본다.
삼성카드 블루데이터랩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이용자 중 30대가 44%로 가장 많았고, 특히 여성 고객 비중이 높았다. 서울 거주자 비율은 62%로 수도권 집중이 두드러졌다.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이들은 단순히 고급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쉐프와의 대화’, ‘공간의 의미’, ‘취향의 확장’을 경험하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파인다이닝 1회 평균 결제 금액은 30만~50만 원 이상이고, 50만 원 초과 비중은 2021년 27%에서 올해 54%로 급등했다. 반면 30만 원 이하 가격대는 46%에서 19%로 줄었다.
고급 외식은 점차 ‘일반 외식’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의 표현 수단, 혹은 **사회적 신호(Signaling)**로 작용하고 있다. 음식이 아닌 ‘나’를 말하는 소비가 된 셈이다.
파인다이닝에 대해 처음에는 낯설고 약간은 배타적인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이건 단지 고급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태도, 취향의 표현, 선택의 자유를 둘러싼 이야기다.
누군가는 “한 끼에 50만 원이면 차라리 해외여행을 간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그 식사에서 느낀 감각이 몇 달을 이끌어준다”고 말한다. 나는 그 둘 모두를 이해하게 됐다.
문제는 ‘파인다이닝이 좋다/나쁘다’가 아니라, 이처럼 소비 구조가 계층화되고, 그 계층이 소비를 통해 더 분명히 드러나는 현상이다. 그만큼 중간 소비층의 실종, 양극화, 그리고 ‘같은 삶의 경험이 사라지는 사회’가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이 흐름을 이해하는 건, 앞으로 어떤 산업이 성장하고 어떤 브랜드가 뜰지를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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