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반도체 업계에 종사하는 친구와 커피를 마시다가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TSMC가 미국에 공장 짓고도 수천억 적자야. 사람은 대만에서 뽑아서 미국에 보내는데, 연봉이 3천만 원대래.”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진짜였다.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애리조나와 독일 공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만에서 뽑은 어학 인력을 연봉 3,300만 원 수준으로 파견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진출 = 글로벌 확장 = 수익 증가’라는 공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시대인가? 반도체, 그 복잡하고 정밀한 산업에서조차 수지가 맞지 않는다면, 이건 구조적인 변화다. 삼성도 예외가 아니라는 말이 더 크게 들려왔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는 최근 대만 본사에서 독일과 미국 공장에 파견할 어학전문 엔지니어를 채용했다. 이들의 연봉은 75만 대만달러(약 3,340만 원).
하지만 이들이 투입될 미국 애리조나 공장의 물가는 대만보다 몇 배 이상 높다. 현지에서는 “이 월급으로는 생활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TSMC는 2020년부터 미국에 120억 달러(약 17조 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애리조나 공장에서만 6,200억 원 넘는 적자가 발생했고, 독일·일본 공장에서도 손실이 발생했다.
인건비 상승, 공급망 비용, 낮은 생산성 등이 발목을 잡았다. 실제로 TSMC의 미국·유럽 공장은 아시아 대비 최대 35% 비싸게 운영된다는 것이 맥킨지 보고서의 분석이다.
그리고 이 구조는 삼성전자에게도 닥칠 일이다. 삼성은 텍사스 테일러에 2025년 양산을 목표로 대규모 파운드리 팹을 완공 중이다. 하지만 미국 내 반도체 인재 부족, TSMC·인텔과의 경쟁, 인건비 상승이라는 똑같은 조건이 기다리고 있다.
공장을 짓는 건 예전엔 ‘투자의 상징’이었다. 일자리, 성장, 지역경제, 기술력까지 상징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반도체 공장은 수천억 적자를 각오해야만 돌아가는 구조가 됐다.
이걸 과연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생존의 조건’에 가까운 것일까?
삼성이나 TSMC 같은 기업들도 이익보다 ‘위치’를 택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나는 이 흐름이 단지 반도체만의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고, 인건비 격차가 커지며,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될수록 **‘수익성보다 전략이 우선되는 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그럴수록 투자자는 무엇을 봐야 할까? 숫자보다 구조, 손익보다 선택의 맥락을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시기가 왔다는 뜻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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