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난 건 새벽 무렵이었다. 뉴스 속에선 타오르는 연기와 시뻘건 화염, 그리고 철강 야적장 위로 바삐 움직이는 소방차들의 모습이 반복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다.”는 문장에 안도했지만, 화면 속 장면은 어딘가 불길했다. 단순한 화재 사고가 아니라, 부산 산업의 한 축이 흔들리는 신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재가 발생한 YK스틸은 얼마 전 ‘부산을 떠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기업이다. 1970년대 이후 사하구 구평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부산의 철강 산업이 이제 점점 이탈하고 있다. 눈앞의 불은 꺼졌지만, 부산의 경제 생태계에는 또 하나의 공백이 남았다.
12일 밤 11시 35분경, 부산 사하구 구평동에 위치한 YK스틸 야적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고철 야적장 내 폐기물 더미에서 시작되었으며, 주불 진화에만 무려 29시간이 걸렸다. 현장에는 고철 3,000톤이 쌓여 있었고, 불에 강한 금속성 물질 탓에 진화는 어려웠다.
불길은 결국 14일 오전 4시 50분경 초진됐고,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고철 처리와 복구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화재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아, 인화성 물질에 의한 발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진화 작업에는 펌프차 9대를 포함해 총 59대의 차량과 138명의 소방 인력이 동원됐다.
YK스틸은 최근 부산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주요 이유는 생산 효율성과 물류 환경 개선이다. 회사는 이미 울산과 경북 포항, 충북 제천 등에 시설을 확장하며 사업 중심지를 이동 중이다. 부산의 공장은 점차 가동률을 줄이고 있으며, 이번 화재도 이 같은 변화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이 YK스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 사하구는 국내 유수의 철강기업과 조선 기자재 업체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상당수 기업이 수도권 또는 동남권 산업단지로 이전했다. 이는 단순한 ‘이전’이 아니라, 지역 산업구조의 재편이라는 점에서 부산의 경제 지형에 중요한 변화다.
나는 지금도 구평동의 풍경을 또렷이 기억한다. 철강 야적장의 묵직한 쇳내, 철판을 자르는 소리, 퇴근 시간마다 한꺼번에 몰려 나오던 작업복 입은 사람들. 이번 화재로 그 공간의 마지막 흔적 하나마저 타버리는 느낌이었다.
산업이 떠나는 도시가 살아남기 위해선 단순히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자’는 구호로는 부족하다. 기존 산업의 흔적을 잘 지워내고, 새로운 용도로 재정의하는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YK스틸의 자리는 빈 땅이 아니라, ‘전환의 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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