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회사에서 ‘인턴’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출근했던 그 시절, 계약서에는 ‘교육과 실습 중심’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실제 업무는 그야말로 풀타임 실무였다. 선배들 퇴근하고 남아 야근도 했고, 고객 응대도, 보고서 작성도 도맡아 했다.
그땐 그냥 “배우는 입장이니까…” 하고 넘어갔지만, 만약 그 기간도 근무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10년 뒤, 그 기간 동안 안 줬던 성과급을 달라고 하면—법적으로 가능할까?
최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한국도로공사에서 채용형 인턴으로 일했던 근로자 425명이 회사를 상대로 “우리는 차별받았다”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근로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들은 2011년과 2018년경 ‘채용형 인턴’으로 도로공사에 입사했다가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런데 인턴 당시 성과급은 받지 못했다. 설날·가정의 달·여름휴가 등 각종 성과급 지급 기준에서 ‘인턴 근무 기간’은 제외됐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인턴은 어디까지나 ‘교육생’이고, 실적이나 성과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달랐다.
“정규직과 유사한 업무를 했다면 차별 처우는 불법”이라는 것이 판결의 핵심이다.
이 판결은 단순한 성과급 지급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턴=싸고 편한 노동력’ 인식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도로공사는 인턴들에게 예산·회계·세무관리, 품질감독, 계약관리 등 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핵심 업무를 맡겼다. 심지어 일부는 ‘과장’ 직급 수준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성과급은 못 준다는 주장이 과연 상식적인가?
법원도 이 부분을 주목했다.
“단순 보조가 아닌 본질적으로 정규직과 유사한 업무였다.”
결국, 이름만 인턴이지 실질은 근로자였다면, 법적 보호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판례가 만들어진 셈이다.
나는 이 판결을 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한편으로는 “이걸로 10년 전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고?” 싶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나도 그때 회사에 기여한 게 있었는데, 왜 아무것도 없었지?” 싶은 억울함도 들었다.
우리는 그동안 ‘인턴’을 마치 일종의 사회 훈련 프로그램쯤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했나.
야근도 했고, 고객도 상대했고, 중요한 회의도 들어갔다.
그런데 임금과 처우는 “배우는 중이니까…”라는 한마디로 정리됐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도로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기업이 이름만 바꿔 부른 ‘저렴한 근로자’ 시스템에 메스를 댈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제 ‘인턴’이라는 이름에 숨겨진 노동의 가치를 다시 평가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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