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뉴스에서 ‘수출’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반가움보다는 의심부터 들 때가 있다. 특히 ‘원전 수출’이라면 더 그렇다. 뭔가 좋은 소식일 것 같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복잡한 이해관계와 지지부진한 구조가 드러난다. 마치 하나의 기계를 두고 버튼 누르는 사람과 조립하는 사람이 따로 싸우고 있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최근 10여 년 동안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원전 수출 주도권을 놓고 오랜 갈등을 이어왔다. 원전을 수출한다고 했을 땐 마치 하나의 국가 프로젝트처럼 보이지만, 내부를 보면 계약 따로, 기술 따로, 책임 따로였다. 그래서일까? 정부가 드디어 이 구조를 하나로 묶기로 결정했다.
2025년 4월 22일,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전과 한수원에 나뉘어 있던 원전 수출 기능을 단일화하기로 결정했다. 이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연구용역을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가 맡는다는 것인데, 이 협회의 수장이 다름 아닌 김동철 한전 사장이다. 공정성과 이해상충 문제가 없을지, 업계에선 주시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주도권 싸움’ 같지만, 원전 수출은 단일 기업이 아닌 국가 전체의 신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이슈다. 실제로 한국은 UAE 바라카 원전 수출 이후 추가 수주 실적이 미미한 상태다. 그 사이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은 각자 체계를 단일화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수출 계약을 한전이 하고, 기술은 한수원이 맡고, 계약자와 시공자가 다르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외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런 구조가 불안요소로 보일 수밖에 없다.
2050 탄소중립 기조에 따라 전 세계 원전 시장은 재부상 중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40년까지 전 세계 원전 시장은 500조 원 이상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선 신속하고 일관된 수출 체계가 필수다.
두 조직 모두 ‘필수적’이지만, 함께 움직이기엔 너무 독립적이었다. 이제는 정책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할 타이밍이다.
나는 이 뉴스를 읽으며, 다시 한 번 **‘국가 역량의 일관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자금이 아무리 풍부해도, 내부가 분열되어 있다면 외부에 신뢰를 줄 수 없다. 특히 원전처럼 고위험·고비용 산업일수록 이는 더 중요하다.
한전과 한수원 중 누가 맡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이제라도 책임 있는 하나의 창구를 만드는 것이다. 시장은 의외로 단순하다. 결정된 방향에 따라 빠르게 움직인다. 다만 방향이 없을 땐,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
[경제공부]“SK하이닉스, 삼성 넘었다”… HBM 시대가 연 기업의 역사적 반전 (1) | 2025.04.24 |
---|---|
[경제공부] “국민 자격증이 장롱으로”… 공인중개사, 빙하기에 접어들다 (0) | 2025.04.24 |
[경제공부] “Sell USA, 다시 등장한 트럼프 리스크”… 세계 자본이 미국을 떠나는 이유 (1) | 2025.04.23 |
[경제공부] 롯데, '직무급제'로 조직판을 바꾼다 (2) | 2025.04.23 |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감동시킨 교황”… 프란치스코, 그를 보내는 시간 (0) | 2025.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