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 산책을 하다가 문득 마주친 풍경이 있었다. 동네 오래된 다세대 주택 앞에 작은 이삿짐 트럭이 서 있었고, 젊은 부부가 박스들을 나르고 있었다. 지나가는 말로 “이번엔 공공임대 들어간다네요”라는 소리를 듣고, 내 귀가 번쩍 뜨였다. 예전 같았으면 ‘임대주택’이라는 말이 거리낌의 대상이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살기 위한 전략’처럼 들린다. 실제로 얼마 전 본 뉴스도 그런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부산 일광신도시의 통합공공임대주택 이야기다.
부산 기장군 일광신도시에서 올 연말 입주를 앞둔 통합공공임대주택이 모집을 마쳤는데, 무려 2.5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3년 전 같은 지역에서 0.8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던 ‘일광 행복주택’과 비교해 3배 이상 오른 수치다. 특히 청년 전용 49㎡ 평형은 경쟁률이 10 대 1에 달했다.
이 임대주택은 총 1134세대 규모로, 24~25평형의 전용면적 59㎡가 가장 많으며, 넓은 평형과 합리적인 임대료(보증금 약 4500만 원, 월세 36만 원 내외), 장기거주 가능(최대 30년) 등이 주요 매력으로 꼽힌다. 민간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대부분 1 대 1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공공임대가 오히려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변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한 경쟁률이 아니다. 동일한 입지, 유사한 조건에서도 불과 몇 년 전엔 외면받았던 공공임대가 왜 지금은 ‘안전한 대안’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과거에는 ‘임대’라는 말에 낙인이 찍혀 있었다.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가는 곳’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세사기를 포함한 주거 불안정성, 고금리로 인한 주택 구매 부담 증가 등이 ‘임대의 재해석’을 부르고 있다.
특히 2022~2023년을 휩쓴 전세사기 사건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전세는 위험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보증금이 안전하고 임대료가 저렴한 공공주택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일광 통합공공임대처럼 넓은 평형에 가족 단위 수요까지 고려한 설계가 더해지면, 굳이 소유를 고집할 이유가 줄어든다.
나는 예전부터 부동산을 ‘사는 것이냐, 빌리는 것이냐’보다 ‘안정적인가, 불안정한가’의 기준으로 생각하려 했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소유의 감정적 안정감에 익숙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안정감의 조건도 달라진다.
실제로 주변에서 공공임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 과거엔 “사는 집이 아니잖아”라며 가볍게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살기 좋은 집이면 되는 거 아냐?”라는 시선이 늘어난다. 나 역시 앞으로 주거 전략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안전하고 장기적인 삶이 보장된다면, 반드시 소유여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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